바로가기 메뉴
본문내용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서브메뉴 바로가기
Home > 고객센터 > 공지사항

공지사항

제목 [나홀로 차박 세계일주 4] 러시아 귀부인들은 지위대신 자유를 택했다!
작성자 여행투어 작성일 2022-11-02 12:32:37
[나홀로 차박 세계일주 4]

러시아 귀부인들은 지위 대신 자유를 택했다!!



이르쿠츠크 시내에 있는 카잔 교회 외부

시베리아는 러시아 영토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살을 에는 영하의 기온과 매서운 추위로 악명이 자자한 곳이다.
얼음장 같은 공기를 호흡하면서 내쉰 숨이 바로 얼어붙고 수염에 고드름이 달린다.
시베리아는 지구 육지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다.
죄수와 영웅, 가스와 유정, 탄광과 금광의 땅인 이곳은 여행과 탐험,
아드레날린 분비에 목마른 사람들을 위한 최적의 장소다.
지구에서 가장 광대한 숲과 벌판, 맑은 호수들이 있으며 목조 건물들이 즐비한 작은 도시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이렇게 말하면 바로 이곳이 짱 박혀서 남은 생을 보낼 이상적인 장소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곳에서 3,000km를 차로 운전하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그는 반사회적 인물일 것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잖은가? 말도 안통하고 음식도 안 맞는 곳에서 개고생을 할 가치가 있는 곳이
바로 시베리아다.
그중에서 내가 가야할 엄마의 자궁 같은 곳, 한민족의 기원이 시작되는 곳이 바이칼이다.
바이칼 주변에는 도시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우리와 얼굴 생김새가 비슷하고 DNA가 매우 유사한 울란우데와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르쿠츠크가 그곳이다.




이르쿠츠크 130 지구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9,288km 거리의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중간 기착기이기도 한
이르쿠츠크는 철도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지점이다.
1812년 나폴레옹 전쟁에서 러시아를 방어하고 파리까지 진격한
러시아 귀족 청년들은 유럽의 새로운 문명에 눈을 뜬다.
그들이 경험한 유럽은 자유주의 사상이 널리 퍼진 반면,
조국 러시아에서는 농노제와 전제 정치로 인해 농민들은 비참하게 살았다.


그들은 비밀 결사대를 조직해 위로부터의 혁명을 꿈꾼다.
마침내 1825년 황제 니콜라이 1세에 대한 충성 서약식이 예정된 날 봉기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러시아어로 ‘데카브리’라고 하는 ‘12월’에 반란을 일으켜서 이들을 일컬어 ‘데카브리스트’라고 한다.
주동자 5명은 바로 교수형에 처해졌고 120명 청년 장교들은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그 가운데 시인 라에프스키는 <명상>에서 자유를 찾은 감격을 다음과 같이 자문자답한다.

“방랑자여, 그대는 왜 당신의 매력적인 골짜기를 야생의 숲, 바위덩어리, 어두운 협곡으로 대체하였는가?”

“이 산들 속에서, 이 화강암의 절벽 속에서, 나는 힘과 자유를 숨 쉰다.”




이르쿠츠크 박물관

러시아의 위대한 시인 푸시킨도 남부로 유배를 가는 바람에 데카브리스트의 대열에 직접 끼지는 못했지만,
그가 쓴 <시베리아의 깊은 광맥 속에서>의 마지막 구절에서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한다.

“무거운 족쇄가 떨어져 나가고 감옥은 허물어지리니 자유는 기쁘게 문 앞에서 당신들을 맞이하고
형제들은 그대들에게 검을 건네리라.”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볼콘스키의 실제 모델인 볼콘스키도 시베리아에서
노역생활을 마치고 이르쿠츠크에 정착했다.
볼콘스키 백작 주택을 개조한 박물관에는 그들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유물과 사진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그 중에서 그들 부인들의 극진한 순애보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뒤흔든다.
데카브리스트들에게 유배형이 내려진 뒤 황제는 부인들에게 반역자인 남편들을 버리고 귀족 신분으로 재가를 하든지, 아니면 귀족으로서의 모든 특전을 버리고 남편들을 따라 유배지로 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명을 내린다.
부인들은 주저 없이 유배 길을 택한다.
유배형을 마친 그들은 이르쿠츠크를 그들이 그토록 꿈꾸던 자유와 이상의 도시로 변모시킨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진 ‘시베리아의 파리’ 모습이다.
이르쿠츠크는 자유세계를 찾아 방황하던 이광수의 소설 <유정>의 무대이기도 하다. 




이르쿠츠크 시내에 있는 즈나멘스키 수도원, 3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성경이 보관되어 있다.


또 한군데 들려야 할 곳은 앙가라 강의 지류인 우샤코브카 강 건너편에 자리잡은 즈나멘스키 수도원이다.
1689년에 문을 연 이 수도원의 내부는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되어 있다.
수도원에는 300여년(1698년) 전에 만들어진 귀중한 성경이 보관되어 있다.
유명 인사들의 공동묘지도 함께 있는데, ‘러시아의 콜럼버스’라고 불리는 쉘리호프의 묘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는 지도와 컴퍼스, 닻, 원고 등이 청동으로 부조되어 있다.




카잔 교회 내부.

그 외에 주요 관광지로는 카잔 성당과 130 지구와 박물관 등이 있다.
130 지구는 18세기 초반에 형성된 목조 마을로, 불에 타 폐허가 된 지역을 도시 설립 350주년을 기념하여
현대식으로 깔끔하고 세련되게 새로이 조성했다.
현재는 이 도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젊은이와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도심지에는 보행자 도로에 녹색 선으로 되어있는 그린 라인이 있는데,
그 선을 따라서 반나절 정도면 도시를 둘러볼 수 있다. 




바이칼 물범


한민족의 기원, 바이칼 호수

시베리아 남서쪽에 있는 바이칼 호수Lake Baikal는 깊이가 1,700m로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이며,
지구 민물의 20%를 담고 있어 단일 저수량으로는 가장 큰 곳이다.
바이칼 호수는 정말 크다.
얼마나 큰지 면적이 우리 남한과 맞먹는다.
사람이 걷는 속도로 바이칼 호수 둘레를 완주하려면 넉 달이 걸린다.

바이칼 호수는 진화론적으로 대단히 가치 있는 다양한 동식물들을 갖고 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독특한 민물 종인 바이칼 물범Baikal seal이다.
이 녀석들의 외계인 같은 두 눈동자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공포에 턱이 덜덜 떨린다.
그리고 기후 불균형 때문에 매우 다양한 식물이 자란다.
서쪽 지역은 듬성한 침엽수림과 산악 스텝steppe 지대이다.
동쪽 지역에는 소나무 숲이, 북쪽 지역은 낙엽송 삼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이칼에 호수에 서식하는 다양한 물고기 고유종들


이 호수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생물이 산다.
동물은 1,340종(고유종 745종), 식물은 570종(고유종 150종)이다.
호수에서는 오랜 기간 계속된 수중 생물의 진화로 아주 독특하고 고유한 동식물들이 생겨났다.
바이칼 호수는 ‘러시아의 갈라파고스’로, 진화론적으로도 대단히 가치 있는 곳이다.

산, 북쪽 수림대boreal forest, 툰드라, 호수, 섬과 스텝에 둘러싸인 호수 유역의 경관은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바이칼 지역에는 역사, 고고학, 문화 기념물이 1,200점 있는데, 이 가운데 1,000점은 국가가 보호하는 기념물이다.
이런 연유로 1966년 유네스코에서는 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바이칼 호수가 워낙 크다 보니 섬들도 있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알혼섬이 있다.
부랴트인들은 징기스칸의 어머니가 브랴트인이며
징기스칸이 알혼섬 출신이라고 믿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고증된 바는 없다.

이르쿠츠크에서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리스트비얀카는
바이칼 호수를 만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다.
이 지역 특산물인 생선을 훈제한 ‘오물’은 쫄깃쫄기하고, 호수 깊은 곳에서 살며 몸이 지방으로만 이루어져
햇빛 아래에서는 바로 녹아버린다는 ‘골로키’도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느리다고 알려진 환바이칼 열차를 타고 약 5시간 정도 잔잔한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바이칼 호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는 호수에서 가장 큰 섬인 올혼 섬이다.
샤머니즘의 성지로도 잘 알려져 있으며,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다.
군용차를 타고 섬을 둘러보며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고,
파랗고 투명한 호수와 하늘 전체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
불빛 하나 없는 까만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빛 등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느낄 수 있다.




바이칼호수에 노을이 진다


한겨울에 바이칼 호수를 종단하다.

우리나라의 여성 산악인이자 후배인 김영미는 겨울에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를 홀로 종단했다.
724km의 호수를 한 달 동안 90kg의 짐을 배낭과 썰매에 지고 걸어간 것이다.
내가 캠핑카로 시베리아 횡단을 한다고 하니까 그녀는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얼마나 추웠으면 낮에도 걸어가면서 행동식을 먹었다.
땀이 식는 순간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은 얼음이 ‘쩍~’하고 깨지는 소리였다.
밥 먹다 말고 얼음이 주저앉을까 하는 불안감에 짐을 텐트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기도 했다.
어떨 땐 자다 일어나 텐트를 걷어 밤새 걷기도 했다.
출발한 지 보름이 지나서야 하늘과 구름이 아름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엔 가장 힘들게 걸어야겠다는 생각에 빛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걸었다.
하루하루 걷는 행위가 생각을 단순하고 하고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을지 모른다.
나 또한 생이 계속되는 한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을 것이다.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약사 부부

이르쿠츠크까지 오는 동안 우연히 주유소에서 충북 제천에 사는 약사 부부를 만났다.
그분들은 세계 일주를 하기 위해 캠핑카를 구입했지만 코로나 대유행이 오래 가는 바람에 캠핑카를 팔고
조지아를 비롯한 발틱 3국을 여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7월에 블라디보스토크 항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한국으로 돌아왔다.
캠핑카를 새로 구입하려고 했지만 올 겨울에야 인도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1년밖에 안된 캠핑카를 운 좋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9월 2일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르쿠츠크를 향해 가던 중 요소수 인젝터에 문제가 있어 엔진이 정지한다는 경고음이 켜졌다.
어쩔 수 없이 인근의 가장 큰 도시인 하바로프스크에 가서 수리하기로 했다.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러시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착할지 몰랐단 거예요.” 

한 러시아 사람이 다가와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면서 한 시간 동안 자기 차인 양 꼼꼼하게 체크해주었다.
오히려 이쪽이 너무 미안해서 “이제 그만 하시고 볼 일 보세요”라고 계속 말해주어야만 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도 친절하고 성심성의껏 차를 점검해주었지만 부품이 없어 수리하진 못했다.

결국 러시아 내에서 지극히 사소한 부품인 요소수 인젝터를 해결하지 못하고
한국에서 다음 배편으로 오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처리했다.
그래서 20일 정도 일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몸 고생, 마음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문
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국과 러시아는 60일 무비자 협정을 맺고 있는데,
차량 통관이 늦어지면서 한 달 가량 연해주에 묶여 버리고 말았다.
시베리아의 넓은 땅덩어리에서 정말 우연찮게 우리는 주유소에서 만났다.
하지만 만남의 기쁨도 잠시, 그들 부부는 부리나케 모스크바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들은 연신 엑셀을 밟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