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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목 [나홀로 차박 세계일주 3] 러시아 사우나엔 식혜 대신 보드카가 있다!
작성자 여행투어 작성일 2022-11-02 11:02:42

[나홀로 차박 세계일주 3]

러시아 사우나엔 식혜 대신 보드카가 있다.



하바로프스크의 레닌 광장,레닌 광장은 항상 도시의 중심부에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유일한 한국인 숙소인 슈퍼스타게스트하우스에는
나보다 3주 먼저 떠났다가 되돌아 온 김 선생님 내외분이 있었다.
연세는 70대 초반으로 캠핑카가 아닌 도요타 렉서스 승용차를 가지고 세계여행을 시작한 분이었다.
그들은 같이 출발한 일행들을 따라가느라 하루 종일 운전을 하다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하바로프스크에서
며칠 동안 정비한 다음에 이르쿠츠크까지 갔었다.
하지만 무리한 일정에 사모님의 건강이 안 좋아져서 세계일주를 포기하고 다시 블라디보스토크에 돌아왔다.
그분들의 표정에는 오랫동안 준비한 여행을 미처 끝마치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배어 있었다.

“여보, 그래도 알래스카에서 북미 대륙을 종단하고 남미 여행까지 했으니 뭘 더 바라겠어요?”

“여행은 아무리 마셔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같은 것이야. 삶 자체가 여행이니...”

두 분의 말에서 안도와 후회, 아쉬움과 후련함이 묻어 나온다.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은 혼다 오토바이로 모스크바까지 15일 동안 갔다 다시 13일 만에 돌아왔다.
하루에 거의 1000km씩 달렸다니 질주 본능이 보통이 아니다.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재미가 아닐까?




성모승천대성당 전경



러시아 3대 성당, 성모승천대성당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우수리스크에 있는 고려인 문화센터에서 차박을 하고 오전 8시에 하바로스크를 향해 출발한다. 거리는 700km로 9시간 반 정도 걸린다.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단풍 색깔이 진해진다.
어느 시인이 초록은 동색이라고 했는데 시베리아에서 보는 노란색은 파릇파릇한 노란색부터
황갈색의 은은한 노란색까지 다양하다.
아침에 해가 막 떴을 때 나뭇잎에 이슬이 맺히면 숲의 나무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편다.
나뭇잎에 맺힌 이슬방울마다 무지개가 떠서 더욱 영롱해진다.

도로 양옆에는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자작나무 숲이다.
출발할 때는 노란색이었다가 어느새 황갈색으로 변해간다.
하바로프스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잎새들이 떨어져 앙상한 가지들만 열병식을 하듯이 나란히 서 있다.
예전에는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사용했다고 한다,
오늘날 결혼식을 화촉을 밝힌다고 하는데, 그 화촉이 자작나무 껍질이다.

시베리아의 산세는 높낮이가 두루뭉술한 게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다른 점은 끝도 없는 평야에 숲과 나무들이 우거져 있고 멀리 낮은 산들이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버려진 쓸모없는 땅으로 보일지라도 그 속에는 온갖 동식물들의 안식처가 되어
우리 인간들처럼 군집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바로프스크 시내를 에돌아 흐르는 아무르 강, 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른다.

하바로프스크의 랜드마크는 도시를 따라 흐르는 황톳빛 아무르 강(중국에서는 흑룡강이라 부른다)이다.
17세기에 이곳을 탐험한 예로페이 하바로프의 이름을 딴 도시다.
극동 러시아의 최대 도시인 하바로프스크는 19세기 중반부터 100년 이상 산업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소련의 태평양 함대 기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행정 및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넘겨주었다. 

러시아 5000루블짜리 지폐에 나오는 아무르 강 다리와 해안 절벽,
성모승천(프리오브라젠스크)대성당 등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특히 성당은 모스크바의 구세주 대성당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삭 성당과 함께 3대 성당으로 불리며,
높이가 95m에 이른다.
그리고 극동 예술 박물관은 1800년대 러시아 화가들이 그린 시베리아 개척 당시의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성모승천대성당 예배.


1847년 동부 시베리아 총독으로 파견된 무라비요 아무르스키는
‘태평천국의 난’으로 고통 받는 청나라를 협박해 아무르강 이북 지역을 얻었다.
또한 동쪽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해 연해주 지방을 장악했다.
오늘날 중국과의 국경선을 보면 하바로프스크의 동쪽부터 아래로 두만강 지역까지 러시아의 땅이 된 이유다.
그의 이름을 딴 거리는 한마디로 역사의 거리다.
거의 모든 건물의 1층 벽에는 각종 기념 동판들이 붙어 있다.
하바로프스크에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하바로프스크는 항일 운동과 한인 사회주의자들의 근거지였으며,
최초의 여성 한인 공산주의자인 김알렉산드리아가 33세의 나이로 1918년 러시아 정부군에 의해
처형을 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는 죽기 전 조선 13도를 기리며 13발자국을 걸은 뒤 총에 맞아 순국했으며, 시신은 아무르강에 버려졌다.
 


120도 열기 속에서 40도짜리 보드카

러시아를 여행하다보면 도시마다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보통 ‘반야’라고 부르는 사우나다.
안에 들어서면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실처럼 긴 의자들이 줄지어 있다.
다른 점은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 발가벗은 채 누워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키가 180cm 이상 되고 한결 같이 배가 나오고 허리둘레도 장난이 아니다.
아마도 시베리아의 곰처럼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진화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계단으로 된 긴 의자들이 있고 반대편에는 장작불로 달군 주먹돌에 물을 뿌려 발생한 수증기로
땀을 내는 구조다.
땀을 내며 베닉Venik(참나무 잎사귀로 만든 빗자루)이라는 나뭇가지 뭉치로 사정없이 온몸을 두드린다.
피부의 땀구멍을 열기 위해 자신의 몸을 채찍질하는데, 빗자루와 비슷하다고 해서 베닉(빗자루)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처음에는 벌거벗은 남자들이 자기 몸을 학대하듯이 사정없이 때리는데, 그 소리가 처음에는 엇박자가 나듯이
불규칙하다가 나중에는 337 박수처럼 묘하게 장단이 맞는다.

1971년 시카고 대학교의 마사 매클리톡 교수는 한 논문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이 생리주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논문에서 함께 사는 대학 기숙사 여대생들의 생리주기를 조사했는데,
6개월이 지났을 때 월경이 일치하는 현상을 발표했다.
그 원인으로 여자들의 사회생활 속 교감이 페로몬이라는 화학적 물질을 통해
신체의 생리 주기를 일치시킨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 인간에게 페로몬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러시아 사우나의 베닉 소리는 사우나 안의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교감이 일치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흰 고깔모자를 쓰는데 뜨거운 증기로 인해 맨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덩치가 큰 러시아 사람들이 완전히 벌거벗은 채 하얀 모자를 쓰고 사우나에 들어가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하바로프스크 극동 예술 박물관에 있는 그림들



하바로프스크 극동 예술 박물관에 있는 그림들


러시아 목욕탕의 특징은 120도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40도 보드카를 마시는 음주 문화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고온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몸뚱이를 얼음 조각을 풀어놓은 듯한 차디찬 냉탕 속에 들어가 몸을 식힌다.
이 원리는 강철을 제련하는 방법과 같다.
1975년 제작한 ‘운명의 희롱 혹은 목욕을 참 잘했어요’라는 유명한 소련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매년 설 명절이 오면 어김없이 방영된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러시아에서 새해 명절의 의미와 더불어 목욕탕과 음주 문화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만큼 러시아 목욕 문화에서는 음주를 빼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하바로프스크에는 볼 게 많다.
그중에서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꼭 들러보아야 할 곳이 있다.
극동예술박물관의 주요 작품들은 16세기 네덜란드 플레미쉬(플랑드르) 지방의 풍속화와 풍경화,
그리고 러시아 화가들이 18세기 이후 시베리아 벌판에서 생존에 몸부림쳤던 시베리아 원주민의 삶을 그린 그림들이다. 그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그림 속의 인물들을 보면 그들은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또한 초상화들을 보면 그들의 얼굴에서 풍겨 나오는 성격을 볼 수 있다.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램브란트는 자신의 초상화를 여러 점 남겼다.
20대 젊을 때 그린 그림과 나이가 들어 죽기 전 그림들을 보면 인생무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인물들과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그렇게 그림은 아무 말 없이 우리에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을 던진다.




하바로프스크역.


42톤짜리 레닌의 머리

차는 하바로프스크를 떠나 울란우데로 무한 질주를 한다.
그 전에 스코보로디노까지 1200km를 달려야 한다.
스코보로디노는 만주 대륙 최북단에 접하는 아무르강 유역의 도시로 바이칼-아무르 철도BAM와 연결되는 곳이다.
그곳에서 다시 700km를 달려 과거 중국-러시아의 교역 중계지였던 네르친스크를 지난다. 

이제 도로는 서쪽의 몽골 국경으로 다가간다.
이곳부터는 광활한 대초원이 시작된다. 노란 자작나무 숲을 뒤로 하고 노란 풀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300km를 더 달리면 치타에 다다른다.
동부 시베리아의 광공업과 문화 중심지인 치타는 하얼빈,
창춘을 지나 두만강 유역의 투먼까지 연결되는 만주횡단철도TMR의 기점이다.
이어 600km 떨어진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에 도착한다.

‘붉은 강’이라는 뜻의 울란우데는 과거 몽골 제국의 땅이었다.
이곳의 기점인 몽골횡단철도TMGR는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를 거쳐 중국 베이징과 톈진까지 연결된다.
부랴트 공화국은 러시아 땅이지만 부랴트인이라는 몽골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들은 칭기스칸의 어머니가 부랴트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부랴트인들은 생김새가 우리와 비슷한데다 DNA도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이곳은 바이칼 남동부 지역으로 한민족이 처음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울란우데의 볼거리는 레닌 두상과 불교사원이다.
러시아 주요 도시의 어디를 가도 만나는 레닌 동상은 레닌 광장 한 가운데 우뚝 서 있다.
다리를 어깨 넓이보다 조금 더 벌리고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거나 한손으로 옷깃을 붙잡고 서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울란우데의 레닌 동상은 머리만 있다.
높이 7.7m, 폭이 4m에 무게만 42t이 나간다니 엄청나게 큰 두상이다. 

또 하나의 관광 명소는 라마교 불교 사원이다.
시내에서 35km 떨어진 이볼긴스키 사원은 러시아 라마교의 총본산이다.
이곳에는 75세인 1927년 입적했으나 시신이 썩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기적의 승려 함보 라마가 있다.
가부좌 자세로 명상하다 숨을 멈추고 입적한 함보 라마는 그의 유언대로 앉은 상태 그대로 소나무 관에 넣어 묘지에
매장했다가 75년만인 2002년 관을 열었는데, 시신이 전혀 부패되거나 손상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18세기 러시아 화가가 시베리아 개척 당시를 그린 그림


자발적 노마드의 매력

헤르만 헤세가 말하기를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마음의 속박만이 자기를 구속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자신의 생활 반경 주위에 필요 없는 물건이 너무 많다. 버리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

<호모 노마드>를 쓴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는 인류사를 유목민의 시각으로 서술하면서
인류를 크게 세 분류로 나누었다.
비자발적 노마드(이주 노동자, 난민, 정치망명객 등), 정착민(교사, 직장인, 공무원 등),
자발적 노마드(창작자, 운동선수, 여행가 등).
그러면서 21세기엔 정착에서 유목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에 따르면 나는 자발적 노마드로서 길 위에서 떠도는 유랑민이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울란우데까지 오는 동안 자작나무 숲이 노란 초원으로 변하고 때 아닌 폭설도 맞아봤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차박의 진정한 매력은 자고 싶은 곳에서 자고 쉬고 싶은 곳에서 쉬면서 밤하늘의 별을
온전히 볼 수 있는 점이다.